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살바도르 달리 (문단 편집) === 전성기 === 학교에서 퇴학 당한 [[1926년]], 달리는 자신이 존경하던 [[파블로 피카소]]를 [[파리(프랑스)|파리]]에서 만나게 된다. 피카소는 [[후안 미로]]를 비롯한 자신의 친구들에게 달리를 소개했고 그 영향으로 향후 몇년간 피카소의 화풍과 [[큐비즘]]이 달리의 작품에 노골적으로 드러난다.[[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510/1445603541oo5aEDxznjbUDY4.jpg|바르셀로나의 인형, 1927년作]] [[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510/14456035416ndIsvuMeFdZnUQdYu5XJ1jOHh.jpg|달빛 아래의 정물화, 1927년作]] 이 시기에 달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을 탐독하며 그의 초상화를 그리는 등 열렬한 [[팬]]임을 자처하였고 이는 달리가 [[꿈]]과 [[정신]]의 세계에 대해 표현하게 되는 중대한 계기가 된다. 달리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인데, 이것은 스페인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모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가 처음 고소를 한 사람은 앞집 사람 이었다. 그가 고소를 한 이유는 앞집 사람이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냄새가 너무 좋아서 그림을 그리는데 집중을 할수 없어 고소한 것이라고 한다. 결국 앞집 사람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초현실주의]]의 시초라고 알려진 앙드레 브르통과의 불화로 인해 초현실주의 화가 그룹에서 제명당하기도 했다. 그의 기이한 언행은 브르통이 평생을 걸쳐 지키려고 했던 초현실주의의 순수함과 엄격함에 자꾸 균열을 냈고, 특히 달리는 자주 정치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였는데 초현실주의가 그렇게 싸우고자 했던 자본주의, 파시즘의 망령을 찬양하는 발언을 자주 하여 브르통을 비롯한 수많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지만 달리의 발언은 도통 진지한 것인지 찬양을 빙자한 빈정거림인지 종잡을 수 없는 빈정거림이 많았으니 참고. 어쨌거나 이제와서 역설적인 것은 초현실주의 추구의 끝은 결국 스스로를 부정하고 파괴하고 뛰어넘게 되는 것이니 달리의 수많은 빈정거림과 악성 조크들은 한편으론 초현실주의와 통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하나 확실한 것은 달리와 그의 평생의 반려자 갈라는 물질적 풍요를 매우 즐겼으며 자신의 활동이 돈과 직결되는 것을 애써 싸우지 않았다. 이는 그가 "아비다 돌라스(Avida Dollars)"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가지고 논 것에서도 드러난다[* 스페인어로 "달러에 게걸들렸다"라는 의미의 가명 Avida Dollars는(엄밀히 말해 문법적으로는 "Ávido/a de dólares"가 맞다) 자신의 이름 Salvador Dali의 글자를 섞어 만든 새로운 가명으로, 이는 훗날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수많은 자아들 중 하나라며 가명을 짓고 활동하는 행위의 시초가 되었다.]. 전술한 보스케와의 대담에서는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지칭한것과는 반대로 스페인의 [[독재자]]이자 [[파시스트]]인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여 종래에는 피카소도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피카소는 [[https://www.google.co.kr/search?q=picasso+franco%27s+dream+and+lie&espv=2&biw=1680&bih=925&source=lnms&tbm=isch&sa=X&ved=0CAYQ_AUoAWoVChMI3YDIx7bkyAIVRo6UCh1G2wNM#imgrc=YrgIpzBKv2XkMM%3A|'프랑코의 꿈과 거짓 Dream and Lie of Franco']]라는 그림으로 프랑코를 비판한 바 있다.] 참고로 피카소는 [[게르니카]]와 [[한국전쟁]]에서의 [[미군]]을 비난한 것으로도 유명한 [[공산주의자]]였다. [[1949년]] 조국 스페인으로 돌아와 잉태한 성모,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 등 종교적 색채를 드러낸 작품들을 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